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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1. 5. 11:13 - 정문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4)

자비의 여신은 할머니를 가엾이 여기셨나 보다.

그녀를 편안히 보내줄 기회를 세 번이나 주셨다.

 

하지만 그녀의 자손은 그녀에게 자비롭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의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

자신들의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그녀의 쓸쓸하고 초라한 죽음마저 빼앗아버렸다.

 

할머니는 총 세 번의 심정지가 오셨다.

10분 1분 1분

마지막 심정지가 오셨을 때 의사는 다시 cpr여부를 물어봤다.

삼촌은 의사결정을 위해

세종에 있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거셨다.

그리고 어머니의 의견을 존중해 주셨다. 

 

어머니는 무지했다. 그저 할머니가 보고 싶은 마음뿐이셨을 거다.

그 선택이 그녀를 고통스럽게 죽이는 것이라는 걸

알지 못하셨을 것이다. 모르는 것은 죄이다.

 

이 선택의 무게가 오롯이 어머니의 짐은 아니다. 

우리 가족 모두의 짐이다.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가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그저 막연히 그날을 무책임하게 기다려 온 것이다.

그녀를 쓸쓸하게 버려두고 그게 최선이라 위안하며 각자 마음의 평온을 찾기 바빴다.

 

 

그녀는 외롭고 쓸쓸하게 또 고통스럽게 차가운 병실에서 죽어가고 있다.

이미 오래전 탄생과 함께 떼어 낸 탯줄을 대신해

차갑고 투명한 긴 관들이 그녀의 앙상한 육체를 뒤덮었다.

 

새롭게 창조된 탯줄이 그녀에게 주는 것은 삶이 아닌 절망이었다.

 

 

그녀가 반응하는 것이 나의 목소리인지

목구멍 깊숙이 박혀있는 인공호흡기의 고통인지

연신 꺽꺽 거리며 가쁜 숨을 몰아내신다. 

 

그런 그녀의 눈동자에 맺힌 눈물이 

삶에 대한 욕망인지 자신의 의지로 멈출 수 없는 고통의 눈물인지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단지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그 눈물의 의미가 무엇을 뜻하던

할머니에게 남은 시간이

결코 자비롭지 않을 것이란 사실이다.

 

외롭고 긴 사투의 끝이 어떠한 긍정의 단어도 없을 것이란 것이다.

그럴 것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