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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1. 5. 21:39 - 정문

Let the rain wash away all the pain of her

아침 일찍 부산히 움직이는 발걸음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할머니가 위급하시다는 연락을 받은 어머니의 분주한 행동거지가

반쯤 뜬 나의 시야에 아른거렸다. 

 

어떤 마음인지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혼미한 나의 정신을

완벽히 각성시켰고 평소와 달리 이불자리를 훌훌 털고 병원으로

향할 채비를 했다.

 

다행이다 생각했다. 이번 주말을 넘기며 고통에 몸부림치지 않고

한 시라도 빨리 눈감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그 기도는 들어주셨다.

 

꺼져가는 불씨를 관망하는 아련한 마음으로 할머니의 앞에 섰다.

차마 어떠한 말도 함부로 꺼낼 수 없었다.

한참 손을 붙들고 바라보기만 했다.

 

슬픔과 죄악감에 사로잡혀 던지는 무책임한 말들이

행여나 꺼져가는 불씨에 장작이 되지 않을까

그녀의 사투가 더 길어지진 않을까

어떤 말로 안심시켜야 고통에 몸부림치는 할머니의 육체에

조금의 평안이라도 찾아줄 수 있을까

한참을 고민했다.

 

'옆에 있을게.. 어디 안 가고 할머니 옆에 있을게'

'괜찮아 걱정하지마... 할머니 옆에 꼭 붙어 있을게 아무 걱정하지 마'

 

지긋히 그녀의 초점 없는 눈동자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되뇌었다.

 

그녀의 마른 눈가는 이슬비 적듯 아주 천천히 젖어들어갔다.

'미안해 할머니 사랑해 할머니'

 

끝내 나의 마지막까지 함께한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못한 채

홀로 외로운 사투 끝 그녀의 삶은 마무리되었다.

 

 

 

너무 초라하고 쓸쓸하게 떠나간 그녀의 원한을

사무치게 되뇌이며 슬퍼하겠습니다. 

 

어떠한 간사한 말로 나의 죄를 해명하지도 용서를 구하지도 않겠습니다.

그저 죄송하며 또 죄송합니다. 나 자신이 너무 밉고 역겹지만

나 자신이 미치도록 모순적인걸 알지만 사랑해요 할머니.